편 한 성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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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한 성 경


하나님의 성품과 온 세상 사람들을 죄에서 건져내는 역사를 글로 나타낸 성경의 가운데 예수 크리스토(구세주)가 있다. 성경을 통하여 예수가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려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와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려고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하늘나라로 간 사실을 믿어서, 우리도 끝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믿도록 하는 것이 성경기록의 목적이다.(요 20:31, 요한 알파 4:1,2,3) 성경에는 사람을 죄에서 건져내는 역사 밖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하늘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각종 법규들을 시대별, 인물별로 사건 사건을 통하여 실례로 들어 설명해가면서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구약이 처음에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기록된 것을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통일하여 헬라어(그리스어)가 세계적인 글자로 된 다음에, 유대인 학자 72명이 모여서 당시 세계어인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70인 역이다. 신약은 당시 세계어인 헬라어로 기록 되었는데, 로마가 세계를 통일하여 라틴어가 세계어가 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라틴어로) 히에로니무스 (영어 이름:제롬)가 로마 서민들이 사용하는 불가타(뜻:보통의) 라틴어로 번역하고, 구약도 70인역과 히브리어로 된 것을 참고하여 불가타 라틴어로 번역 하였다. 로마시대의 세계어인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이 종교 개혁 앞까지 사용되다가 종교 개혁이 일어나면서 성경 번역도 라틴어에서 독일어,영어,프랑스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유럽은 칼뱅의 종교개혁에 영향을 받아 성경을 스스로 읽어야한다는 청교도의 믿음은 다양한 성서의 번역을 가져왔다. 성경이 왜 세계적 글자인 헬라어와 라틴어로 처음 부터 기록 하엿는지 아무도 모르고 살아왔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온 세상에 널리 퍼트리려고 미리 준비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성경은 구약 성경이 BC1500-BC400, 신약 성경이 AD100 년 까지 1600 년 동안 여러 사람에 의해 기록 되었고, 신구약 성경이 다 기록 된 다음 부터 2000 년 가까이 지났으니, 그동안 세계나라들의 나라와 풍습이 많이 바뀌었고, 없었던 언어도 많이 생겨나서 이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번역 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래서 외국어로 된 글을 단어나 구절에 얽매이지 않고 글 전체가 담고 있는 뜻을 살려 번역하여 쉽게 이해 하도록 하려고 의역들이 많이 나왔다. 구약 히브리어(70인역참고)와 신약 헬라어에서, 라틴어(로마어)로 로마의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불가타(Vulgata 뜻:일반의,보통의,공용의)) 성경을 번역한 사람은 라틴어로 히에로니무스(영어:제롬Zerom AD 347-420)이다. 2014년 현재 베들레헴의 예수가 태어났던 곳의 옆에, 36년을 성경 번역에 힘을 기울였던 히에로니무스(제롬)를 기념하는 곳이 있다. 하나님이 왜 우주를 만들었을까? "보기에 좋았다"라는 구절이 창세기 1 장에 7번이나 나온다. 하나님이 우주와 사람을 만든 목적은 보기에 좋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을 빛나게 하기 위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목적에 맞도록 살아 가야 한다. 예사야 4321(43장 21절)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만들었으니,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 우리 사람들은 사람 중심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빛나기 위해 이 땅에서 살다가 주님이 부르면 하늘 고향으로 되돌아 가면 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 첫번째가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좋아)하는 것이다" 라고 사람의 목적을 간추려 놓았다. 성경본문 내용의 단위를 미터, 킬로그램 등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문체를 현대적으로 표현하여, 이해하기 편하고 읽기 쉽도록 편집하였습니다. "개역개정판" "쉬운성경" "NIV" "GOOD NEWS" "히브리어-한글대조 구약성경"(허성갑 2009년), 헬라어 원문직역 "신약분해대조성경" (김기수, 로고스. 2006년), "KJV","새번역", "우리말 성경" 등을 참고하여 하나님의 뜻을 글로 표현한 성경 원문 내용에 벗어나지 않도록 하면서, 그 동안 읽으면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들에 대하여 최대한 이해하기 편하고 읽기 쉽도록 하였습니다. ( ) 안의 내용은 본문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덧붙이거나 풀이한 것이다. 성경 읽다가 이해 잘 되지 않는 부분들은 상당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수장절=추수감사절=초막절, 초실절=맥추 감사절=칠칠절, 비파=(울림통 없는)기타, 수금=(작은)하프 그리고 히브리어, 헬라어에는 높임말이 없다는 것을 알고 문맥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에서는 기존 번역과는 달리 높임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널리 보급된 영어 성경도 높임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굳이 하나님에게나 예수님에게 대한 부분에서도 생활에서 잘 사용하지도 않는 어색한 극존칭어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말했다. 말씀하셨다. 먹다, 잡수셨다. 했다. 하셨다. 하시었다. 잠자다. 주무셨다 " 등등 요즈음 신세대와 높임말을 모르고 한국어를 어렵게 배우는 외국인들에게는 훨씬 쉬울 것입니다. AD 7-10 세기 무렵 '맛소라'라는 유대인 학자들에 의하여, 22개의 닿소리(자음) 밖에 없는 히브리어 글에도 홀소리(모음)가 시용되기 시작해서, 티베리아의 맛소라 학파인 아론 벤 아쉐르에 의하여 고안된 홀소리(모음) 원리가 대표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AD 925년의 알렉스 코덱스는 닿소리(자음) 본문에 홀소리(모음)의 강세 부호를 직접 적어 넣었다. AD 1008 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사본도 만들어 졌다. 성경은 모두 1189 (구약 929장,신약260장) 장이다 신.구약성경 모두에 장절이 붙인 것은 프랑스의 궁정 인쇄 기술자 스테파누스(AD 1503-1559) 가 1555년에 신.구약성경 모두에 장절을 붙여서 출판했다. 스테파누스의 라틴역 불가타(Vulgata) 성경이며.오늘날의 성경은 1560년판 제네바 성경의 장절 구분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이제 성경을 단순한 원문에서 한글로의 번역을 뛰어넘어, 요근래 한류가 세계를 뒤엎듯이 세계적 공용어인 영어, 스페인어를 앞질러서 배우기 쉬운 한글로 된 성경이 세계 공인 성경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한글은 글 자체가 발음 기호이다. 모든 나라의 말과 소리를 글로 비슷하게라도 표현할 수가 있다. 인도유럽어는 문자가 있고 조합된 단어가 있고 단어를 읽는 발음기호는 따로 있다. 배울때에는 발음기호를 별도로 배운다. 한글은 별도의 발음기호가 없어도 온갖 소리를 기록할 수 있다. 그 자체가 발음 기호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베트남말과 몽고말과 인도말과 그들의 문자를 사용하지 않아도 그들의 말을 표기할 수 있다. 한글은 모든나라 언어의 발음기호이면서 동시에 말이다. 그래서 모든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모국어에 관계없이 한글을 배우면 몸에 이롭다. 한글로 적을 수 있는 발음은 11,000 개, 영어 1,000 개, 중국어 400 개, 일본어 400 개로 한글은 무엇이든 거의 다 쓸수 있다. 2014년 현재 전세계 237개 나라 가운데 자기나라의 글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30 개 나라이다, 사용언어별 순위를 보면 1위(중국어 사용국가 33개국,사용인구(쓰거나 읽을줄 모르는 문맹률 30%) 12억),2위스페인어(31개국, 4억1천), 3위 영어(99 개국,3억 3천만), 4위(인디어 4 개국, 2억6천만), 5위 아랍어(60 개국, 2억 4천만), 6위 포르투칼어(12 개국, 2억), 7위(벵골어(4개국, 1억 9천만),8위(러시아어 16개국,1억 7천), 9위(일본어 3개국,1억2천만), 10위(자바어,3개국, 8,400만), 11위(란다어(파키스탄),6개국 8,200만),12위(독일어 18개국, 7,800만), 13위(한국어 5개국 7,700만),14위(프랑스어 51 개국 7,400만) 이다. 1443년 훈민정음(한글의 옛이름) 해례본 서문(머릿말)을 쓴 정인지는 한글은 똑똑하면 한나절, 좀 어둔해도 10 일 이면 깨칠 수 있는 글이라 하였다. 사실 요근래 애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앞에 한글을 다 깨치는 경우가 많아도 가정 교육을 많이 받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서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한글을 제2외국어나 외국어로 가르치는 학교수는 2010년 540개, 2011년 695개, 2012년 827개, 2013년 1053개, 2014년 1111개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학생수는 5만7464명, 6만4611명, 7만7712명, 8만6415명으로 해마다 늘어 2014년에는 9만3144명을 기록하면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지원 사업 규모는 2011년 28억, 2012년 30억, 2013년 35억까지 늘었다가 2014년 35억, 2015년 33억으로 점점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글의 우수성과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상 증대와 K-POP, 한국 드라마 등 한국의 대중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외국의 일반인 및 학생들의 한국어 학습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된다”며 “한글을 제2외국어로 사용하게 되면 한국에 대한 친근감과 이해가 높아져 한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기 때문에, 한글 전문교원 양성, 한글표준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한글 교육 확산에 적극적인 대책과 관련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2015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이한 이 날 세계문자학회 등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2차 세계문자올림픽에서 한글이 1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번 세계문자올림픽 대회는 세계 27개국 문자 (영어, 러시아, 독일, 우크라이나, 베트남, 폴란드, 터키, 셀비아, 불가리아, 아이슬란드, 에티오피아, 몰디브, 우간다, 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 남아공, 한국, 인도, 울드, 말라야람, 구자라티, 푼자비, 텔루그, 말라시, 오리아, 뱅갈리, 캐나다)가 경합을 벌였다. 각국 학자들은 대회에서 30여 분씩 자국 고유문자의 우수성을 발표했다. 세계문자올림픽의 심사기준은 ▲문자의 기원 ▲문자의 구조와 유형 ▲글자의 수 ▲글자의 결합능력 ▲문자의 독립성 및 독자성 ▲문자의 실용성 ▲문자의 응용 개발성 등을 기초로 평가됐다. 세계문자올림픽은 가장 쓰기 쉽고, 가장 배우기 쉽고, 가장 풍부한 다양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찾아내기 위한 취지로 열린다고 한다. 한글은 16개국이 경쟁한 지난 2009년 대회에 이어 또 다시 1위를 차지하면서 그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한편 이번 세계문자올림픽에서 1위는 한국의 소리 문자 2위는 인도의 텔루구 문자, 3위는 영어 알파벳이 차지했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지난2015년 6월 중국 난징과 쑤저우, 쿤산을 둘러보고 놀란 적이 있다. 고층빌딩이 다투듯 올라가고, 도로는 자동차로 미어터지고, 쇼핑센터는 현란한 음악으로 가득 찼다.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은 또 있다. 호텔 이름, 도로 표지판, 교통 안내판, 광고 문구를 읽기가 쉽지 않았다. 1970년대 고등학교를 다닌 우리 세대는 한자를 별도로 배웠다. 거기에 개인적으로 신문사 입사를 위해 한자를 공부했다. 그래서 웬만한 한자는 쓰지는 못할지언정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웬걸, 우리가 배운 한자는 오늘의 중국 땅에서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간판은 간체자로 돼 있어 헷갈리고 난해했다. 그저 외국의 문자였을 뿐이었다. 조선 시대 한·중·일 3국 학자들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한자로 필담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제 더 이상 조선시대의 중국이 아니다. 교회안의 작은 모임의 이름도 '사랑방'이 좋을 것 같다. 사랑이라는 말은 오래 옛부터 사람들이 모여서 노는 곳을 뜻하면서 있었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과 뜻은 다르지만 어떻던 우리귀에 익은 말이고 오래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예를 들어서 종로 사랑에 종로 1 사랑방 종로2 사랑방 종로 3 사랑방 등등 이미 우리 나라에는 2010년에 100 만명,2014년에 160만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중국843,000, 베트남 186,000, 파키스탄.스리랑카 등 남부 아시아 76.000. 미국 71,000, 필리핀 65,000. 우즈베키스탄 27,000,몽골 25,000 등 그들에게 한글로 된 성경을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 요근래 들어 온 외국인들은 한국에 돈 벌려고 들어 왔기 때문에 어느정도 한글들은 알고들 있다. 그들에게 복음도 알리고 한글도 가르치면 된다. 그리고 신약에서 몇몇 자주 사용되는 사람이름과 지역이름명은 신약 성경이 기록된 헬라어 원어에 더 가까운 발음으로 표기 했습니다. 구약은 신약에서 다루는 사람이름, 지역이름은 헬라어 중심으로 구약에서만 언급되는 부분은 히브리어 중심으로 표기했습니다. 히브리어는 현재 'ㅅ' 발음으로 표기된 부분의 'ㅉ' 발음이 많습니다. 앞날을 생각하여 기존 눈과 귀에 익어 사용하였던 단어들도 생소하지만 헬라어 발음에 더 가깝도록 표현하면 다른 나라 인명인 장소 이해가 더 빠를 것입니다. 크리스토(영어 크라이스터 , 그리스도), 페트로(영어 피터,베드로), 파울로(바울), 마르코(마가) 등등 참고로 요즈음의 지역 이름이 생긴 유래도 쉽게 알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聖 페트로 城), 상파울로( 성 파울로), 카나안( 가나안)등등 주로 'ㅂ'으로 표기된 부분은 'ㅍ'의 표기가 맞습니다. ( 페트로, 파울로 등),필라델페이아(빌라델비아), 받침 "ㅅ"은 'ㅌ' 'ㄷ'표기가 발음에 더 가까워요. ( 롵(롯), 룯(룻), 다뷛(다윗. David) , 찌바(영어 Ziba, 시바), 므피보쉩(므비보셋), 즐로프핱(Zelopehad, 슬로브핫), 아마쯔야(Amaziah, 아마샤), 플레쉩 (영어Palestine 팔레스틴, 블레셋), 등등) 영어 성경의 단어들과 비교해보면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멸망 후 서기 70년-1948년 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라도 없이 떠돌이 생활하다가, 1948년에 현재 이스라엘 땅에 자리잡아 국가를 이루면서, 죽은 언어와 같았던 히브리어가 다시 살아 나기 시작했다. BC 587년에 바빌로니아로 포로로 잡혀 가면서 부터 히브리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그 대신 당시 아람어라든가 주위 정세에 따라 그들이 배우는 언어도 달랐다. 히브리어는 회당에서 구약 성경을 읽을 때나 몇몇 유식한 유대학자들이 폼을 잡을 때에만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881년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한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1858-1922년)가 앞장서서 히브리어를 다시 살리기 시작하였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이 되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히브리어를 다시 살리기 시작하였다. 한글은 세종 때엔 1446년 어리석은 백성이 자기의 뜻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널리 알려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다음 약 500년 가까이 유림 사대부의 반대로 한자가 공식 글자 이었다가 1894년 갑오경장 다음 부터 고종황제가 법률과 공식문서에 국문을 사용하도록 발표했다. 한글이 제대로 사용된 것은 12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시기도 일본의 강점기 36년을 빼면 실로 100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엄청난 발전을 하여 모든 국민이 한글도 못 읽는 사람은 0.1 % 정도로 세계최대 문명국가가 되었다. 그 힘을 바탕으로 5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60위권 밖에 되지 않던 국가 경쟁력이 15위권 안으로 들어섰다. 1900년 대 초까지 (한글을 깔보는) 언문, 또는 통시글(화장실에서도 쉽게 배울 수 있다는 뜻), (집안에서 조용해야 하는 여자들도 쉽게 배우는)암클, (아이들도 쉽게 배우는)아햇글 이라 하면서, 한문을 많이 배운 사람들이 자기의 학문을 자랑하는 사람들로 부터 천대 받아왔다. 성경이 순 한글로 번역된 다음 부터 한글이 많은 발전을 하였다. 불과 1906 년에 발표된 최초의 신소설 이인직의 '혈의 누(血淚)' 같은 책은 불과 100 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세로로 쓰기에다가 한문 공용, 아래아 같은 글 혼용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나도 읽기 쉽지 않은 소설이다. 순 한글로 만들어진 독립신문을 발간하여 획기적이 한글 발전을 도우고 이승만이 대한민국 첫째 대통령이 되도록 도운 서재필, 한글 발전에 많은 공을 세운 이윤제,주시경, 김윤경,최현배 등 한글 학자들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예수 믿고 성경 공부를 한 여자들이 교육도 많이 받고 여자들의 인권을 향상 시켰다. 여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앗는 가는 유관순의 스승 하난사(김(난사,Nancy의 한국식 이름) 이야기를 봐도 알 수 있다. 이화학당 출신의 박에스더가 의대생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었다면 하란사는 인문계에서 처음으로 미국에 유학, 문학사 학위를 받은 ‘신여성’이다. 특히 조선 여성의 처지를 ‘꺼진 등불’로 묘사하며 이화학당에 입학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런 가운데 하란사의 신상 기록 일부가 잘못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란사 남동생의 손자 김용택(68)씨는 “할머니는 기생 출신으로 관리의 첩으로 산 것이 아니다”며 “무역업을 하는 집안 장녀로 태어나 당당히 공부해 조국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하란사의 남동생, 김동연(金東淵)의 장남 김정국(金正國)의 5남이다. 하란사는 딸이 한 명 있었으나 일찍 숨졌다. 김씨에 따르면 하란사는 1872년 평양에서 부친인 김병훈과 모친인 이씨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이후 한양(서울)으로 이사해 서울 평동 32번지에서 부모에게 한학을 배우며 아버지의 무역업을 도왔다. 1911년 아버지는 무역업에 전념하기 위해 인천으로 이사갔다. 하란사라는 이름은 이화학당 입학 후 세례를 받고 ‘낸시(Nancy)’라는 이름을 얻은 뒤 한문식으로 바꾸어 ‘난사(蘭史)’라 붙여졌다고 한다. 성씨도 남편 성을 따라 ‘하란사’ 또는 ‘김하란사’로 불렸다는 게 대체적 정설이다. 김씨는 “당시 여자들은 이름이 없었다. 세례명을 받았다는 얘기는 나중에 역사가들에 의해 쓰여진 것 같다”며“원칙적으로는 ‘김란사’가 맞다. 하란사란 이름은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 입국심사관이 남편 성을 묻자‘하’씨라고 답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말했다 가장 큰 오해는 하란사가 기생 출신으로 남편인 하상기의 첩이 됐다는 설(說)이다. 김씨는 “터무니없는 말이다. 글 쓰는 이들이 확인 없이 인용했다”며 “할머니는 무역업을 하던 부친 밑에서 풍족한 생활을 누렸으며, 결혼 역시 하상기의 전처인 조씨 부인이 죽은 이후 시집을 갔다”고 반박했다. 23살의 나이에 아들 하나와 딸 넷이 있는 45살의 하상기와 재혼을 하였던 것이다. 하란사는 1894년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한 것을 보고 교육의 중요성을 자각했다. 하지만 공부하기 위해 찾아간 이화학당은 입학을 거부했다.하란사가 기혼여성인 데다 유력한 집안이라는 게 이유였다. 하란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몇 차례에 걸쳐 학교를 찾았고 하루는 교장 룰루 프라이 앞에서 등잔불을 직접 끄면서 말했다. “내 인생은 이렇게 밤중처럼 캄캄합니다. 나에게 빛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들이 배우고 알아야 자식을 가르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의연한 조선 여성의 발언 앞에 프라이 교장도 어쩔 수 없었다. 학비는 자비 부담하겠다는 조건으로 하란사를 입학시켰다. 이 일화는 선교사였던 프라이 교장이 미국에 보낸 보고서에 그대로 기록돼 있다.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도쿄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대에서 1년을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와 정동교회에서 서재필의 ‘미국의 남녀 평등한 활동’이란 강연을 듣고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1897년 12월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항에 도착했다. ‘하란사’란 이름은 여기서 처음 사용했다. 그는 1898년부터 2년간 워싱턴DC의 하워드대학과 디커니스인스티튜트에서 공부했다. 하란사 귀국 후 국내에서는 여성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됐다. 숙명과 진명여학교 등이 세워졌고 정부에서는 해외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여성 3인에 대해 환영 행사를 열었다. 1909년 황성신문(5월 5일자)은 “박에스더와 하란사, 윤정원씨가 귀국해 여자 교육에 종사함과 생명에 근무함을 감복해 경희궁에서 환영회를 열었다”며 “여자를 교육함은 초유한 미사(美事)라 여자 학업이 앞으로 발달됨은 가히 찬하하겠도다”라고 밝혔다. 하란사는 이화학당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턴 대부인을 도와 여성 계몽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러면서 이화학당에 학생 자치단체인 ‘이문회(以文會)’를 조직, 지도했는데 여기서 유관순은 이문회 회원으로서 하란사의 지도를 받았다. 이듬해인 1910년 9월 이화학당에 대학과가 신설되면서 하란사는 유일한 한국인 교수로 참여했다. 하란사는 교사와 기숙사 사감을 거치며 이화학당의 교감으로서 활동했다. 열렬하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여성 하란사는 서울 남대문 상동교회에서 앨버슨 선교사와 함께 교회 부인영어학교를 부인성경학교로 바꾸며 전도부인 양성에 힘을 썼다. 전도활동도 열심이었던 하란사는 1911년에만 14차례 전도를 나갔으며 1426차례 가정 방문을 했고 250여명의 여인들이 교회에 나왔다. 하란사는 1916년 미국 뉴욕 사라토가에서 열린 세계감리교 총회에 참석했다. 마침 이 무렵 시카고대에서 신학공부를 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에 파이프 오르간을 보내기 위해 재미한인 동포에게 호소문을 보내고 순회강연을 다녔다. 은혜로운 예배를 돕자는 게 취지였지만 실제로는 한국의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고 애국운동에 참여하도록 종용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그렇게 모금운동을 벌여 1918년 우리나라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 정동교회에 설치됐다. 오르간은 하란사의 나라사랑과 민족애가 녹아있는 애국의 상징이었다. 후손인 김씨에 따르면 하란사는 오르간이 정동교회에 설치되자 직접 연주를 했으며, 연주를 들었던 교인 모두가 감격해 울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하란사는 이듬해 4월 10일 파리국제강화회의의 한국대표로 비밀 파송됐다가 중국의 베이징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시신이 검게 변해 있었다는 증언으로 독살설이 유력하다.김난사는 1919년 4월 10일 45살에 죽고, 그의 남편 하상기는 1920년 69살에 죽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하란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900년 대 초 까지만 하더라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 여자들은 심지어 돈이 필요한 부모들에 의해 팔려 가는 사람이 많았고, 결혼한 남자들의 첩으로 들어 가는 여자들도 많았다. 여자들은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그 예가 덕성 여대 설립자 최 섭섭이다(딸만 위로 낳은 부모에게 6 번째도 딸이라고 그랬다.) 나중에 최미리사라고 세례명을 받앗다. 17살에 시집 가서 남편이 3 년 후에 죽고, 그 다음에 예수를 믿고 중국으로 미국으로 다니면서 힘들게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학교를 세워서 여자들도 배울수 있게 하였다 한다. 1900년 대 까지는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서당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은 사람 즉 약 10 % 미만의 사람들만이 한자로 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요근래는 1900년대 앞의 옛글들이 책이나 인터넷에 많이 있기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한글도 배우기는 쉬워도 천대시하여 집에서 배우는 경우 밖에 다르게 가르쳐 주는 곳도 배울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없었다. 남자들의 대부분과 바깥 나들이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여자들 거의 모두가, 어려운 한자는 물론, 쉬운 한글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1945년 해방 앞에는 국어 사전도 없었다. 거저 먹고 자고, 일찍 결혼 해서 애낳고, 남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하고, 여자들은 무명이나 삼으로 실을 만들어 집에서 베틀에 앉아 옷감 짜서 옷 만들어서 빨래하기 바빴다. 남자들은 군대가서 보초를 서 보면 보초서는게 얼마나 힘드는 일인가 알 수 있다. 보초설 때에는 잡생각 가지지 말고 눈을 뜨고서 나라와 대통령과 같이 근무하는 친구들과 적들도 예수믿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습관을 걸러야 한다. 그리고 1960 년 대 앞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한자와 한글이 같이 사용 되어야 뜻을 쉽게 이해한다는 주장이 많아서 거의 모든 문서들에 한자와 한글이 같이 사용되었다. 1961년에 초등(국민학교)에 입학하였던 나도 6 학년 국어책에 한글 옆에 괄호로 한자어를 배웠다. 그리고 중학교 때 이름표는 한자, 국어 책은 국한문 혼용, 그러다가 1968년 쯤 한글을 전용하라는 방침 때문에 한글 전용 하다가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는 고전은 한자이기에 한자를 공부하고 선생님들이 한자를 잘 알기에 출석부 이름도 한자 이었다. 그래서 어떤 한자 실력이 적은 선생님은 학생들 이름도 어려운 글자는 잘 못 읽는 웃지 못할 일들도 있었다. 아직도 한글 전용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1940년 앞 까지의 사람들은 학교도 없고 굶주려서 먹고 사는 일에 바빠서 초등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이 50% 정도로 쉬운 한글도 읽을 수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 교육 받은 번역가들이 한자 용어를 많이 사용하자고 주장한 것은 마땅한 결과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한국 현대사에서 위정자들의 편견과 친일인사들로 인해 갈지자 횡보를 이어왔다. 1964년 당시, 정부는 미군정 때부터 한글로만 표기된 교과서를 일제강점기처럼 한자혼용으로 바꾸고 1963년에는 ‘이름씨, 그림씨’같은 순 우리 한글 토박이말을 ‘명사, 형용사’ 같은 일본식 한자말로 쓰도록 강요했다. 한자로는 예수를 耶蘇라고 쓰고 중국발음으로 예수라고 읽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한국식 발음에 의해 耶蘇(야소)로 읽혀진 것이다. 초기선교사들도 예수를 야소라고 읽었는데 한자 번역본을 사용한 까닭이다. 이후 번역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원래의 호칭으로 "예수"라고 바로 잡은 것이다. 기독(基督)이라는 말은 크리스토라는 말로서 히브리어로 "메시야"이며 헬라어로 "크리스토스"다. 중국 사람들은 크리스토를 基利斯督라 쓰고 "지리스뚜"라고 읽었다. 이에 대해 조선 사람들은 基利斯督(기리사독)으로 읽었다. 기리사독은 한자의 우리말 발음인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지리스뚜를 첫 자와 마지막 자만을 따서 基督이라 쓰고 "지뚜"라고 읽으며 크리스토를 약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토를 나타내는 약자 지뚜(基督)가 조선 발음에 의해 基督(기독)으로 표기 된 것이다. 기독이라는 말은 크리스토를 중국 사람들이 맞는 한자가 없어서 다른 한자를 빌려서(가차하여) 사용한 것의 준말이다. 그래서 발음도 맞지 않고 뜻도 없는 '기독교'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차라리 크리스토교, 혹은 예수교, 예수 크리스토교라 해야 한다 일본사람들도 基利斯督과 그 축약형인 基督을 받아들여 자기네 발음으로 읽는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부호인 카다카나를 사용하면 キリスト라고 쓰고 "키리스토"라고 읽는다. 일본사람들도 基督이라는 한자어 이름을 사용하지만 그것을 읽을 때는 반드시 キリスト라고 읽는다. 반면에 음운체계가 훨씬 탁월한 한국말로는 크리스토스를 중국식 基利斯督나 일본식 キリスト보다 훨씬 원음에 가깝게 음차할 수가 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 이다. 한국의 성경 번역자들은 중국과 일본이 채택한 基利斯督를 채택하지 않았다. 그대신 순한국말로 '그리스도'라고 음차 번역을 해 낸 것이다. 한국말 특성을 살린 대단히 훌륭한 번역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훌륭한 번역을 완성해 놓고서도 여전히 基利斯督이니 基督이라는 말을 쓸 뿐 아니라 그걸 '기리사독'이니 '기독'이라고 읽고들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대단히 어이없는 일이다. 컴퓨터를 개발해 놓고서 주판알 퉁기는 격이니까. 基利斯督이나 基督은 중국말로 "크리스토스"라는 헬라어 이름을 음차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원어에 그다지 가깝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게 자기네 나라 말글을 사용해서 음차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한국말로는 基利斯督의 중국식 발음보다 훨씬 원음에 가깝게 음차할 수가 있다. '크리스토스'라고 쓰면 거의 완벽한 음차가 된다. 또 우리나라도 1900년대 초 번역 당시는 이스라엘 나라는 세워지지도 않았고, 히브리어나 헬라어 표현을 공부한 사람이 없어서, 아마 기존 사람 이름이나 지역 이름들의 표기들은 한자에서 옮기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한자도 중국식 발음은 원문 발음에 더 가깝다(예:'마태'의 중국식 발음 (마타이), 헬라식 발음 (마타이) ) '이방'은 거의 이스라엘 밖의 다른 나라를 의미하므로 '외국'으로 표기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단어는 데바림(뜻:말씀들(신명기(뜻:申다시말한命율법記 율법의 반복 헬라어 제목)의 히브리어 제목) '말 더듬이 모쉐'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모쉐),뛰넘절(유월절 Pass over), 샤밭날(안식일,히브리어(샤밭),헬라어(사바톤),영어(sabbath),쉬면서 예배하는 날),샤밭년(안식년), 페리토메(헬라어, 히브리어:브리트 밀라, 한자어:할례,포경수술),펜테코스테(오순절),바르게 살아가는 (의로운), 쉼온(시므온),레뷔(레위), 빈야민(베냐민),이사앜(이삭),예사야(이사야),대추야자나무(종려나무), 올리브나무(감람나무), 탈란토(달란트) 등 이다. 그리고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맨 앞에 구약 성경을 히브리어에서 그 당시 세계어인 헬라어(그리이스어)로 번역한 70 인역에 대한 설명이 있으며, 마타이오 복음 맨 뒤에 구약과 신약의 중간 역사를 간추린 것을 덧붙여서, 구약 선지서와 신약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루카복음 맨 뒤에 예수님의 예루살렘 패망의 예언을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기록을 요약해서 덧붙였습니다. 글씨체도 엉망이고 단거리 달리기에는 재능이 없는 나에게 주님이 글 다듬는 재능은 선물로 주었다고 봅니다. 저는 신학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고, 1973년 경북 김천고등 졸업, 1974 - 1978년2월 울산공대 조선과를 졸업하고,1978-1980 군복무, 1981-1986년 현대중공업 설계부, 1986 - 2010년 까지 거의 조선소 협력회사 설계부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은 10살 때(1963년)부터 정도이고 공예배는 빠지지 않습니다. 성경은 1976 년 까지 5독 정도 하고 그 이후는 1년 1독 하고 있습니다. 현재 약 50독 정도 했겠지요. "GOOD NEWS" 영어성경 1994-2008년 2번 필사 했습니다. 이렇게 적는 것은 신학자도 아니고, 신학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감히 성경을 편집하여 배포하느냐 할까 싶어서 적었습니다. 모든 조건을 구비한 성경집필 사람은 찾기 어렵겠지요. 언어 전문가도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를 공부한 3명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그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다면 될 수 없고, 젊은 사람들은 사회적 경험이 적어서 지나간 일들을 이해 하기 힘들고, 결혼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남자들 마음이나 몸, 여자들 마음이나 몸에 대해서 몰라서 그렇고, 하여튼 완벽한 적격자는 거의 없다고 봐야 겠지요. 교회 출석은 거의 합동측이었고 학교 다닐때는 통합측 교회도 4년 정도 다녔습니다. 살다가 보니 부인은 성결교 출신, 처남들은 성결교 목사,동서들은 순복음,통합측 목사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 작업은 2009년 2월에 시작하여 8월에 1차, 2010 년 2월에 2차, 2010년 7월에 3차, 2011년 2월에 4차, 2011년 8월에 5차, 2012년 1월에 6차, 2012년 6월에 7차, 2012년 10월에 8차, 2013년 2월에 9차, 2013년 5월에 10차, 2014년 6월에 16차,2014년 9월에 17차,2014년 10월에 18차,12월에 19차, 2013년 8월에 11차,10월에 12차,2014년 1월에 13차, 2014년 3월에 14차, 2014년 4월에 15차, 2015년 2월에 20차,3월에 21차,4월에 22차,5월에 23 차,6월에 24차,9월에 25차,12월에 26차, 2016년 3월에 27차로 마쳤습니다. 2014년 12월달에 6일 동안 '편한성경' 집필에 도움을 얻으려 이스라엘을 다녀 왔습니다. 성경을 더 편하게 이해하고, 읽기 쉽도록 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주님에게 돌아와 조금이나마 주님나라 넓히는데 도움이 되어 하나님이 빛나도록 하는게 목적입니다. 호산나! 할렐루야!


구약

창세기(1~25장)

창세기(26~50장)

출이집트기(출애굽기)(1~20장)

출이집트기(출애굽기)(21~40장)

레뷔기(레위기)(1~14장)

레뷔기(레위기)(15~27장)

민수기(1~18장)

민수기(19~36장)

데바림(신명기)(1~17장)

데바림(신명기)(18~34장)

예호슈아(여호수아)(1~12장)

예호슈아(여호수아)(13~24장)

사사기(1~21장)

룯기(룻기)(1~4장)

사무엘상(1~16장)

사무엘상(17~31장)

사무엘하(1~12장)

사무엘하(13~24장)

열왕기상(1~11장)

열왕기상(12~22장)

열왕기하(1~13장)

열왕기하(14~25장)

역대상(1~15장)

역대상(16~29장)

역대하(1~18장)

역대하(19~36장)

에즈라(에스라)(1~10장)

느헴야(느헤미야)(1~13장)

에스테르(에스더)(1~10장)

욥기(1~21장)

욥기(22~42장)

시편(1~40장)

시편(41~80장)

시편(81~120장)

시편(121~150장)

미쉴레(잠언)(1~16장)

미쉴레(잠언)(17~31장)

코헬렡(전도서)(1~12장)

쉬르 하쉬림(아가)(1~8장)

예사야(이사야)(1~22장)

예사야(이사야)(23~44장)

예사야(이사야)(45~66장)

예레미야(1~13장)

예레미야(14~26장)

예레미야(27~40장)

예레미야(41~52장)

예레미야 에카(애가)(1~5장)

에즈켈(1~16장)(에스겔)

에즈켈(에스겔)(17~32장)

에즈켈(에스겔)(33~48장)

다니엘(1~12장)

호쉐아(호세아)(1~14장)

요엘(1~3장)

아모스(1~9장)

오바댜(1장)

요나(1~4장)

미카(미가)(1~7장)

나훔(1~3장)

하밬쿡(하박국)(1~3장)

즈판야(스바냐)(1~3장)()

학가이(학개)(1~2장)

즈카르야(스가랴)(1~14장)

말라키(말라기)(1~4장)

 

 

신약

마타이오(마태)복음(1~14장)

마타이오(마태)복음(15~28장)

마르코(마가)복음(1~16장)

루카(누가)복음(1~12장)

루카(누가)복음(13~24장)

요한복음(1~11장)

요한복음(12~21장)

사도행전(1~14장)

사도행전(15~28장)

로마서(1~16장)

코린도 알파(고린도전서)(1~16장)

코린도 베타(고린도후서)(1~13장)

갈라티아서(갈라디아서)(1~6장)

에페소서(에베소서)(1~6장)

필맆포서(빌립보서)(1~4장)

콜로싸이서(골로새서)(1~4장)

데쌀로니케 알파(데살로니가전서)(1~5장)

데쌀로니케 베타(데살로니가후서)(1~3장)

티모데 알파(디모데전서)(1~6장)

티모데 베타(디모데후서)(1~4장)

티토서(디도서)(1~3장)

필레몬서(빌레몬서)(1장)

히브리서(1~13장)

야코보서(야고보서)(1~5장)

페트로 알파(베드로전서)(1~5장)

페트로 베타(베드로후서)(1~3장)

요한 알파(요한1서)(1~5장)

요한 베타(요한2서)(1장)

요한 감마(요한3서)(1장)

유다서(1장)

요한계시록(1~22장)

[사해]

[시나이반도]

[시나이 광야]

[아브라함 이주경로]

[아이지도]

[에베소 원형극장]

[신약시대 지도]

[구약지도]

[올리브나무]

[요단]

[종려나무]

[출애굽지도]

[홍해]

[황충]

[마라]

[무화과 나무]

[갈리리]

[성지1]

[당나귀]

[쉬타,로뎀나무]

[메추라기,자고새]

[시내산과 밧모섬]

[백향목]

[성경사본,히브리어, 헬라어 성경 부분 사진]

[고수나무]

[창세기(1장1절) 맨 처음에 하나님이 우주를 만들었다]

[ 요한복음(3장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여, 그래서 하나뿐인 아들을 주었으니, 그(예수)를 믿는 사람마다 죽지 않고, 끝없이 살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

[사도행전(16장31절)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래야 당신과 당신 집이 살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15장11절)우리는 주 예수의 은혜를 통하여 죄에서 건져냄을 받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들(외국인들)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 주 예수의 은혜를 통하여 죄에서 건져냄을 받습니다.)" ]

이땅에 왜 이렇게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 왔을까 배우기 쉬운 한글을 배워서 땅 끝 까지 주님의 기쁜소식을 알리라는 신호이다. 한국 교회는 주님의 그런 위대한 뜻을 모른채해서는 안된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60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 상당수가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등 비기독교권 국가 출신이라고 한다. 또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가운데에는 한국인과 결혼해 정착한 이주 외국인이 10만4천7백여 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2년 3만4천7백여 명에서 5년 만에 3배나 증가한 수치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선교활동을 하는 단체와 교회들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가 복음을 받아들인 외국인 근로자가 신학을 공부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에 입국하면 이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복음을 전할 것이며 그들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기쁜소식을 알리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어떤 관심과 지원이 필요할 것인가가 관심의 초점이 될 것이다. 영어권이 아닌 다른 나라에 선교사를 보내려면, 우선 선교사 1 가정 당 1 년에 3000,4000 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야 한다. 그것도 그 나라 말과 글을 익히는 기간 제외하고 그런데 국내에 들어 온 외국인들이 기쁜소식(복음)을 알리고 예수를 믿는다면 그 모든 것이 단숨에 해결 된다. 우리나라도 1900 년도 초창기에는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핍박을 받은 신앙의 선배들이 있지 않었던가. 그들을 사용하는 분은 하나님이다. 국내에서 예수 믿고 신학을 하려는 외국인들에게 일 년에 학비조로 1000 만원 정도만 보태어 주어도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일부 신학교에서는 그런 외국인들을 교육시키는 학교가 있다고 하지 않나 국내의 모든 신학교에서 한국에 와서 예수 믿고 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입학 자격도 한국식으로 하지 말고 경우에 따라 쉬운대로 하면 된다. 그 나라에서 최종학력을 묻고 세례받고 신앙고백 받고 영어와 한국어 시험만 치르면 된다. 나머지는 세월이 지나면 해결 된다. 예수 믿는 것을 어디 정부에 허가 받아서 믿는가? 물론 100 퍼센트 다 성공 하면 좋지만 일부는 속임수도 잇으리라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에도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이 끼였는데 이 땅에 살아 가면서 가라지는 있기 마련이다. 우리 나라도 60 년대 앞뒤로 하여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신학 공부해 와서 한국 교회의 보탬이 되지 않앗던가 한경직 , 김장환, 목사 하면서


[주님의 기도문, 신앙고백, 십계명, 통힙 기쁜 소식(복음서)]

[성경의 역사]

[배경 음악 내주를 가까이, 거룩한 성 가사]